예전에 쓴 글이지만 라운지 연작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첫 음악은 Café del Mar Volume 6에 수록된 José Padilla의 Adios Ayer입니다만, 딱히 들려드릴 방법이 없네요. 개인적으로 연락하면 또 어찌될 지도…
한 휴대폰 대리점에서 사람 셋을 모았다. 대리점 주인은 세 사람에게 휴대폰을 하나씩 주면서 이 휴대폰을 한나절 둥안 사용해보고 의견을 말해달라고 했다. 첫째 사람은 혹 휴대폰의 배터리가 금방 다할까 하여 전원을 꺼두었고, 둘째 사람은 여자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았다. 셋째 사람은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휴대폰 체험 이벤트에 뽑혔다고 자랑을 했다.
저녁이 되어 세 사람이 휴대폰 대리점으로 돌아왔다.
첫째 사람이 대리점 주인에게 말하기를, “인터넷에는 안티가 많다고 하니 혹 휴대폰의 배터리가 금방 다하면 말이 많을까 하여 전원을 꺼 두었습니다.” 휴대폰을 켜보니 그의 말대로 배터리 세 칸이 모두 차 있었다. 대리점 주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둘째 사람은 “휴대폰은 문자 전송에 지체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여자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았습니다.” 하고 말했다. 대리점 주인이 둘째 사람의 휴대폰을 받아서 살펴보니, 과연 문자함이 가득차 있었고 배터리는 한 칸이 남아있었다. “잘 소모했다. 휴대폰은 네가 가지거라.” 대리점 주인이 미소를 지으며 둘째 사람에게 말했다.
“저는 이 휴대폰이 얼마나 좋은지 널리 알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지인들에게 모두 전화를 넣었습니다.” 셋째 사람이 대리점 주인에게 말했다. 대리점 주인이 셋째 사람의 휴대폰을 받아보니 배터리가 다하고 난 뒤였다. 새 배터리를 끼우고 전원을 켜보니 셋째 사람의 통화 목록이 둘째 사람의 문자함보다도 많았다. 대리점 주인은 “네가 정말 잘 소모했다. 첫째 사람의 휴대폰도 네가 가지거라.” 하며, 첫째 사람의 휴대폰을 빼앗아서 셋째 사람에게 주었다.
나는 이런 연유로 배터리가 한 칸 남은 휴대폰을 가지게 된 둘째 사람이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서 휴대폰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낮에는 여자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느라 보지 못 했었는데 렌즈 주위에 1.3 Mega Pixel 이라고 새겨진 것이 눈에 띄었다. 휴대폰을 열고 카메라 모드로 바꾼 후 창 밖을 비춰보았다. 130만 화소의 렌즈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왠지 비가 내린 후처럼 축축해보였다. 멍하니 휴대폰을 보고 있다가 확인 버튼을 눌러버렸다. 번쩍하는 플래시 불빛에 정신이 들어 얼른 휴대폰을 닫았다.
플래시가 터지면 한칸 밖에 안 남은 배터리가 얼마 못 갈 것 같았다. 대리점에서는 여분의 대용량 배터리도 충전기도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셋째 사람처럼 휴대폰을 두 개 가진 것도 아니다. 새삼스럽게 대리점 주인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배터리를 두 칸이나 잘 소모했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남은 한 칸마저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다가, 그렇게 없어질 배터리라면 차라리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 마디라도 나누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열고 여자 친구의 전화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세 번 울릴 때까지 여자 친구는 전화를 받지않았다. 신호음이 울릴 때마다 배터리는 원래 소모하는 것이다, 배터리는 원래 소모하는 것이다, 하고 되뇌여야 했다. 마침내 여자 친구가 전화를 받았을 때, 그리고 휴대폰에서 배터리가 부족함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렸을 때, 나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미안, 씼다가 좀 늦었어.” 라는 여자 친구의 말에 눈물이 흘러내릴 뿐이었다.